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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통의 문화적 근본체제

최신인기글 2020. 7. 30. 13:28

인간은 성장 과정에서 자기 문화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어떤

제도나 관념을 아주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온 것으로 여긴다.

나아가 그것을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자기 문화의 본질적인 특

성으로 믿기도 한다. 그러나 이런 생각은 전통의 시대적 배경

및 사회 문화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

초래한다. 여기에서 과거의 문화를 오늘날과는 또 다른 문화로

보아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.

홉스봄과 레인저는 오래된 것이라고

믿고 있는 전통의 대부분이 그리 멀지

않은 과거에 발명되었다고 주장한다. 예

컨대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킬트(kilt)를

입고 전통 의식을 치르며, 이를 대표적인

전통문화라고 믿는다. 그러나 킬트는

1707년에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합병

된 후, 이곳에 온 한 잉글랜드 사업가에

의해 불편한 기존의 의상을 대신하여 작

업복으로 만들어진 것이다. 이후 킬트는

하층민을 중심으로 유행하였지만, 1745년

의 반란 전까지만 해도 전통 의상으로

여겨지지 않았다. 반란 후, 영국 정부는

킬트를 입지 못하도록 했다. 그런데 일부가 몰래 집에서 킬트

를 입기 시작했고, 킬트는 점차 전통 의상으로 여겨지게 되었

다. 킬트의 독특한 체크무늬가 각 씨족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

것은, 1822년에 영국 왕이 방문했을 때 성대한 환영 행사를 마

련하면서 각 씨족장들에게 다른 무늬의 킬트를 입도록 종용하

면서부터이다. 이때 채택된 독특한 체크무늬가 각 씨족을 대표

하는 의상으로  자리를 잡게 되었다.

킬트의 사례는 전통이 특정 시기에 정치사회적 목적을 달

성하기 위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. 특히 근대

국가의 출현 이후  국가에 의한 전통의 발명은 체제를 확립

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. 이 과정에서 전통은 그

전통이 생성되었던 시기를 넘어 아주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온

것이라는 신화가 형성되었다. 그러나 전통은 특정한 시공간에

위치하는 사람들에 의해 생성되어 공유되는 것으로, 정치사

회경제 등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시대마다 다양한 의미

를 지니게 된다. 그러므로 전통을 특정한 사회 문화적 맥락으

로부터 분리하여 신화화()하면 당시의 사회 문화를 총체

적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.

낯선 타() 문화를 통해 자기 문화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

라볼 수 있듯이, 과거의 문화를 또 다른 낯선 문화로 봄으로써

전통의 실체를 올바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. 이러한 관점은 신

화화된 전통의 실체를 폭로하려는 데에 궁극적 목적이 있는 것

이 아니다. 오히려 과거의 문화를 타 문화로 인식함으로써 신화

속에 묻혀 버린 당시의 사람들을 문화와 역사의 주체로 복원하

여, 그들의 입장에서 전통의 사회 문화적 맥락과 의미를 새롭

게 조명하려는 것이다. 더 나아가 이러한 관점을 통해 우리는

현대 사회에서 전통이 지니는 현재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

있을 것이다